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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리아, 아무것도 없던 고원 위에 세운 브라질의 미래

  • 작성자 사진: 한스 딜리버리
    한스 딜리버리
  • 13시간 전
  • 5분 분량



브라질의 수도를 묻는다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리우데자네이루나 상파울루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번 대한민국 이재명 대통령의 브라질 방문을 계기로 브라질리아는 어떤 도시인지 한번 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브라질에 살면서 솔직히 브라질리아에 자연스럽게 출장이나 여행을 가게 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보셔도 무방하실듯합니다..ㅎㅎ 먼저 행정수도이기 때문에 비즈니스 관계로 출장을 갈일이 거의 없기도 하고 상파울루 재외교민들은 상파울루 총영사관에서 민원업무를 보기때문에 브라질리아에 위치한 대사관까지 가지 않아도 되거든요.


브라질리아 전경

지금이야 대한민국의 국력이 강대해졌지만 브라질이 브라질리아를 건축하던 시기 대한민국은 전쟁후 매우 궁핍하던 시기였는데 정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리우데자네이루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브라질의 도시이고, 상파울루는 브라질 최대의 도시이자 경제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약간 혼동이 올수도 있지만 브라질의 수도는 브라질 정중앙에 위치한 브라질리아(Brasília)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브라질리아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수도가 된 도시가 아니고 처음부터 '수도를 만들기 위해 만든 도시'였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도시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대통령궁이나 국회의사당 같은 건축물만 볼 것이 아니라, 20세기 중반 브라질 사람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닷가의 나라에서 내륙의 나라로

브라질의 식민지 시대에는 북동부 항구도시인 살바도르가 수도였고, 1763년부터는 여러가지 이유로 남동부 무역 거점인 리우데자네이루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1822년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뒤에도 리우데자네이루는 오랫동안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는데요, 문제는 브라질이라는 나라의 땅덩어리가 거대하다는데 있었습니다.


국토 면적은 약 851만㎢. 대한민국의 약 85배에 이르는 거대한 나라지만 인구와 산업, 정치 권력은 오랫동안 대서양 연안에 집중되어 있어 그렇다면 수도를 아예 내륙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브라질의 내륙 개발을 촉진하고, 특정 해안 지역에 집중된 국가의 중심을 국토 한가운데로 이동시키자는 주장은 항상 있어 왔었습니다.


사실 이런 구상은 브라질리아가 건설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는데 1891년 브라질 공화국 헌법에도 미래의 수도를 위해 중앙고원 지역에 연방구역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가 실제 도시로 바뀌기까지는 다시 수십 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JK

"5년 안에 50년의 발전"

브라질리아 건설을 현실로 만든 인물은 1956년 대통령에 취임한 주셀리누 쿠비체크(Juscelino Kubitschek)였습니다.


그가 내세운 대표적인 구호가 바로 "50 anos em 5" 즉, "5년 안에 50년의 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들어도 상당히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국가 발전 계획입니다.


쿠비체크 정부는 자동차 산업과 도로, 에너지, 공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브라질리아 건설은 그러한 국가적 자신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되었습니다.


한 국가의 수도를 옮긴다는 것은 정부 청사 몇 개를 건설하는 수준의 일이 아닙니다.

도로를 만들고, 전기와 수도를 공급하고, 주택을 짓고, 공무원과 노동자들이 생활할 도시 전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도 기존의 대도시가 아닌 브라질 중앙고원, 허허벌판 한복판에서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브라질리아에서 대햑교를 졸업한 한 이민 선배님은 브라질리아를 말할때 육지속의 섬이란 표현을 쓰시더라구요.


1956년 본격적인 건설이 시작된 브라질리아는 놀랍게도 불과 몇 년 뒤인 1960년 4월 21일 공식적으로 브라질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정말 엄청난 속도입니다.


하늘에서 보면 비행기처럼 보이는 도시

브라질리아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독특한 도시 형태인데요, 브라질리아의 도시계획을 담당한 사람은 1957년 신수도 설계 공모에서 계획안이 선정된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인 루시우 코스타(Lúcio Costa)였숩니다.


루시우 코스타 (중앙)

브라질리아의 중심부를 위에서 바라보면 흔히 비행기(Avião) 또는 새가 날개를 펼친 것 같은 형태로 설명된다. 중앙을 길게 가로지르는 축은 정부 기관과 주요 공공건물이 자리 잡은 기념축(Eixo Monumental)이고, 이를 가로지르는 완만한 곡선 형태의 축을 따라 주거지역이 배치되어 있는데요. 루시우 코스타 자신은 십자가 형태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지만, 완성된 도시의 모습 때문에 브라질리아는 '비행기 모양의 수도'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브라질리아가 단순히 건물을 계획한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어디에서 살고,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에서 쇼핑하고, 어떤 도로로 이동할 것인가까지 계획한 도시라는 것입니다.

주거지역에는 '슈퍼콰드라(Superquadra)'라는 독특한 개념이 적용됬는데 일정한 구역 안에 아파트와 녹지, 학교와 생활시설 등을 배치해 하나의 생활 단위를 만드는 방식이나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라는 특징도 매우 강합니다. 차없이 지내는 몇일동안 정말 생활이 엄청 불편했습니다.. 구멍가게 같은 동네 슈퍼같은것도 없어 갑작스래 필요한 생필품 사러 가는데도 우버타고 가야됩니다


브라질리아를 처음 방문하면 넓어 보이는 도로와 고도규제로 인해 엄청난 공간감이 인상적인 반면, 오래된 도시처럼 꾸불구불한 골목을 걸으며 상점과 카페를 만나는 재미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바로 이 점들 때문에 브라질리아는 지금도 도시계획의 성공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도시로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오스카 니에마이어

그리고 오스카 니에마이어

루시우 코스타가 브라질리아의 '뼈대'를 만들었다면 그 위에 브라질리아의 얼굴을 만든 사람은 오스카 니에마이어(Oscar Niemeyer)였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니에마이어는 직선과 사각형으로 대표되던 현대건축에 과감한 곡선을 끌어들였다. 그에게 콘크리트는 단순히 건물을 지탱하는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조각처럼 휘고 펼쳐지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였습니다.


브라질리아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국회의사당(Congresso Nacional),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대통령 집무처인 플라나우투 궁전(Palácio do Planalto)

Palacio da Alvorada
Palacio da Alvorada

연방대법원(Supremo Tribunal Federal),

연방대법원
연방대법원

브라질리아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등에서 그의 건축 언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두 반나절정도면 둘러 볼수 있고 대성당의 경우 미사 진행시엔 관람을 막습니다..)


브라질리아 대성당
브라질리아 대성당

특히 삼권을 상징하는 주요 건물들이 모여 있는 삼권광장(Praça dos Três Poderes)에 서면 브라질리아가 단순한 행정수도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국회의사당의 두 개의 돔도 인상적이다. 하나는 위를 향해 열려 있고 다른 하나는 아래를 향해 엎어진 듯한 모습이다. 그 뒤로는 두 개의 고층 타워가 나란히 솟아 있습니다.


삼권광장
삼권광장

수십 년 전에 설계된 건물임에도 지금 보아도 미래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 니에마이어 건축의 묘미입니다 그래서 브라질리아에서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현대건축 박물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스카 니에마이어가 건축한 건물들은 브라질 곳곳에 존재합니다~)

1950년대 상파울루
1950년대 상파울루

1950년대 브라질은 왜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브라질은 어떻게 1950년대에 이런 거대한 수도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을까?


당시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는데요, 1950년대의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막 벗어나던 시기라 산업 기반은 크게 파괴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나라였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브라질은 남미를 대표하는 국가로 성장하고 있었죠.

커피와 농산물 중심의 경제에서 벗어나 공업화를 추진했고, 특히 쿠비체크 정부 시기에는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제조업과 사회기반시설 건설이 빠르게 확대됐습니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 외국 자동차 회사들이 브라질에서 생산을 시작하던 것도 이 무렵이고 당시 브라질은 자신들이 앞으로 세계의 주요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는 강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브라질리아는 바로 그 자신감의 상징이었습니다.


브라질리아 건설예정지
브라질리아 건설예정지

아무것도 없는 중앙고원에 완전히 새로운 수도를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 브라질이 꿈꾸던 미래와 자신감을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브라질리아의 거대한 건축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단순히 "멋진 수도"라는 생각을 넘어 이런 질문도 떠오르게 됩니다,


한 나라의 전성기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국가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때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브라질리아는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1960년 브라질의 대답인지도 모릅니다.

Candangos
Candangos

물론 브라질리아의 역사를 낭만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것이 도시 건설에는 브라질 각지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흔히 칸당구스(Candangos)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노동이 없었다면 브라질리아의 기적적인 건설 속도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성된 계획도시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브라질리아 중심부의 계획된 공간 밖으로 노동자와 서민들의 주거지가 확대되면서 주변 위성도시들이 성장했고, 결과적으로 브라질 사회의 빈부격차와 공간적 분리가 새로운 수도에서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자동차 중심의 도시구조 역시 오늘날에는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최근의 도시 트렌드인 걷기 좋은 도시라는 기준에서 보면 브라질리아는 상당히 독특하고 매우 불편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성공과 실패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브라질리아는 더욱 흥미로운 도시인지도 모르죠.


1987년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 되다

브라질리아의 가치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게 되어 1987년 브라질리아의 도시계획과 주요 건축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완공된 지 불과 27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현대도시가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수백 년 된 유럽의 구시가지나 고대 유적이 아니라, 20세기 도시계획 자체가 인류가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라 그 만큼 브라질리아는 세계 건축사와 도시계획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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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과거가 꿈꾸었던 미래

브라질리아를 단순히 '브라질의 수도'라고만 설명하기에는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정치가의 야심이란 바탕속에 도시계획가의 모험적 실험이 있었으며, 천재 건축가의 상상력이 도시 곳곳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브라질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우리는 더 큰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브라질리아를 다니다 보면 그 미래가 실현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허허 벌판 중앙고원의 붉은 땅 위에 불과 몇 년 만에 거대한 수도를 세웠다는 사실만큼은 지금봐도 저력이 놀랍습니다.


어쩌면 브라질리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그 건축물을 가능하게 했던 그 시대의 분위기일지도 모릅니다.


브라질리아는 도시가 아니라, 1950년대 브라질이 상상했던 미래를 콘크리트로 만들어 놓은 곳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직접 그곳을 다녀오면서 책이나 사진으로만 보았던 브라질리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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