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국기,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이야기
- 한스 딜리버리

- 14시간 전
- 3분 분량

"아마존의 초록, 금광의 노랑"은 정말 사실일까?
브라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축구, 삼바, 카니발, 아마존, 커피….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상징하는 것은 역시 브라질 국기(Bandeira do Brasil)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 가운데 브라질 국기는 유난히 독특합니다. 초록색 바탕에 노란 마름모, 파란 원 안에는 수많은 별과 "Ordem e Progresso(질서와 진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브라질에 오래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입니다.
"초록색은 아마존 정글을 의미하고, 노란색은 브라질의 풍부한 금광을 뜻한다."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오늘은 브라질 국기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누구나 믿고 있는 '대표적인 루머'
브라질 사람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설명이 있습니다.
초록색 = 아마존의 울창한 숲
노란색 = 미나스제라이스의 금광
파란색 = 하늘
별 = 브라질의 주(State)
이 설명은 학교에서도 많이 소개되고 관광 안내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는 후대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의미를 부여한 해석일 뿐입니다.
브라질 제국 시절 국기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전혀 다른 의미였습니다.

브라질 제국 국기
원래 초록색은 왕가의 색이었다
브라질이 아직 제국(Empire of Brazil)이었던 1822년.
브라질의 초대 황제는 돔 페드루 1세(Dom Pedro I)였습니다.
그의 가문은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왕가(House of Braganza)였습니다.
브라간사 왕가를 상징하는 색이 바로 초록색이었습니다.
초록색은 자연도, 숲도 아니라 왕실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노란색도 금광이 아니었다
노란색 역시 많은 사람들이 광물이나 금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 의미는 황후였던 마리아 레오폴디나(Maria Leopoldina)의 가문인 합스부르크 왕가(House of Habsburg)를 상징하는 색입니다.
즉,
브라질 국기의 두 색은
초록 = 브라간사 왕가
노랑 = 합스부르크 왕가
라는 두 왕실의 결합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숲과 금" 이야기는 나중에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해석한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도 초록과 노랑을 그대로 사용할까?
1889년. 브라질은 군사 쿠데타로 제국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탄생합니다.
새 정부는 국기를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당시 일부에서는 미국처럼 줄무늬 국기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며칠 동안은 미국 국기를 닮은 디자인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결국 브라질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했던 제국 국기를 유지하되,
왕실 문장을 제거하고 대신 파란 하늘과 별을 넣는 방식으로 현재의 국기가 탄생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의 브라질 국기는 제국의 전통과 공화국의 정신을 동시에 담은 매우 독특한 국기가 되었습니다.

파란 원은 단순한 지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운데 파란 원을 지구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1889년 11월 15일 오전 8시 30분경 리우데자네이루 상공의 하늘을 표현한 천구도입니다.
브라질 공화국이 탄생한 순간의 하늘을 그대로 국기에 담아 놓은 것입니다.
천문학적으로도 상당히 정확하게 별자리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별은 그냥 많이 그려놓은 것이 아니다
브라질 국기에는 현재 27개의 별이 있습니다.
연방 26개 주
연방구(Distrito Federal)
를 각각 하나씩 상징합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각 별이 실제 밤하늘의 별과 대응된다는 점입니다.
남십자성(Cruzeiro do Sul)을 비롯해 여러 별자리가 실제 위치를 바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국기 제작자가 단순히 예쁘게 배열한 것이 아니라 천문학자의 도움을 받아 설계한 것입니다.
왜 별이 거꾸로 보일까?
브라질 국기를 자세히 보면 "별 위치가 이상한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맞습니다.
별자리가 일반 지도처럼 그려진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모습과 좌우가 반대로 보입니다. 그래서 천문학을 아는 사람일수록 처음 보면 조금 놀라게 됩니다.

Ordem e Progresso는 무슨 뜻일까?
국기 가운데 하늘을 상징하는 하얀띠에 ORDEM E PROGRESSO 라는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직역하면 질서와 진보(Order and Progress)입니다.
이 문장은 프랑스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의 실증주의(Positivism)에서 나온 문장입니다.
원래 문장은 (L'amour pour principe et l'ordre pour base; le progrès pour but.) 였습니다.
"사랑을 원칙으로, 질서를 기반으로, 진보를 목표로."
출처 입력
브라질 공화국을 세운 인물들 가운데 실증주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핵심 문구인 "질서와 진보"만 국기에 남게 되었습니다.
브라질 국기는 여러 번 바뀌었다
현재 국기의 기본 디자인은 1889년부터 유지되고 있지만, 사실 별의 개수는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주가 생길 때마다 국기도 수정되었습니다.
1889년 : 21개 별
이후 주가 늘어남
현재 : 27개 별
1988년 이후 현재 형태가 완성되었습니다.

한국과 브라질, 국기가 말하는 차이
한국의 태극기는 철학과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 브라질 국기는 왕실의 역사, 공화국의 탄생, 천문학, 철학, 그리고 국가의 미래 비전까지 담고 있습니다.
서로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두 나라 모두 국기 하나에 수백 년의 역사와 문화가 응축되어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우리가 믿었던 이야기도 틀린 것은 아니다
비록 초록이 아마존을, 노랑이 금광을 의미하도록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브라질 사람들에게 그 두 색은 자연스럽게 그런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국기의 의미도 시대에 따라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왕실의 색이었지만, 이제는 세계 최대 열대우림과 풍부한 천연자원, 그리고 브라질이라는 거대한 나라 자체를 떠올리게 합니다 역사는 변하지 않지만, 상징은 시대와 함께 새로운 의미를 얻습니다.
브라질 국기는 단순한 국기가 아니라 200년 가까운 브라질의 역사를 담고 있는 한 권의 역사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음에 브라질 국기를 보게 된다면 초록과 노랑의 색만 바라보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왕실의 이야기와 공화국의 탄생, 밤하늘의 별, 그리고 "질서와 진보"라는 이상까지 함께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범해 보였던 국기가 전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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