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혼, 카포에라 — 춤인가? 무술인가? 그 경계의 매력
- 한스 딜리버리

- 8월 25일
- 2분 분량
상파울루의 올드타운인 Se 광장지역이나 Salvador 같은 유명 관광지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넓은길 한가운데서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원형을 그린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가운데 두 사람이 부드럽게 돌고 차고 숙이며 마치 춤을 추듯 몸을 주고받습니다. 처음 보면 “축제인가?” 싶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것이 브라질의 카포에이라(Capoeira)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카포에이라는 춤과 무술이 절묘하게 섞인 브라질 전통 무술입니다. 하지만 그 기원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이 매혹적인 움직임 속에는 브라질의 아픈 역사와 자유를 향한 투쟁이 숨어 있습니다.

억압 속에서 태어난 ‘춤추는 무술’
16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아프리카 노예 수입지 중 하나였습니다. 주로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 온 노예들이 사탕수수 농장과 금광에서 혹독한 노동을 하며 살았죠. 그들에게 자유를 꿈꾸는 무기는 필요했지만, 노골적인 무술 훈련은 당연히 금지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예들은 싸움 기술을 춤과 음악에 숨겼습니다. 리듬에 맞춰 몸을 낮추고 발을 돌리고 점프하며,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거나 역습하는 기술을 “춤”처럼 보이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카포에이라입니다.
심지어 ‘카포에이라’라는 이름 자체도 흥미롭습니다. 포르투갈어로 capoeira는 원래 ‘닭장’을 뜻하지만, 브라질에서는 ‘풀숲이 무성한 황무지’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도망친 노예들이 숨어 살던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죠. 그래서 이 이름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저항과 생존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메스트리 빔바
거리에서 도장으로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카포에이라는 한동안 ‘불량배들의 무술’로 낙인찍혀 금지되었습니다. 거리의 갱단들이 싸움 기술로 사용하면서 경찰에게 쫓기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1930년대, 메스트레 빔바 (Mestre Bimba)라는 인물이 등장해 카포에이라를 체계적인 훈련법과 규칙을 갖춘 스포츠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카포에이라를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점차 정부로부터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현재 카포에이라는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브라질 전역뿐 아니라 전 세계 150개국 이상에서 수련되고 있습니다.
활동 인구와 세계적 확산
브라질 내에서만 수십만 명이 카포에이라를 수련하고 있으며, 특히 바이아(Bahia)와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가 주요 중심지입니다. 해외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 한국까지 도장(아카데미아)이 있고, 한국에서도 꾸준히 동호회와 수련생이 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해외에서 카포에이라를 배우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브라질 여행 중 길거리 공연에 반했다가”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음악과 리듬, 그리고 독특한 움직임이 사람을 홀리듯 끌어들이죠.

카포에이라의 구성 요소
카포에이라를 단순히 발차기나 몸동작만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세 가지가 핵심입니다.
1. 징가(Ginga) — 카포에이라의 기본 스텝이자 흐름. 항상 몸을 리듬에 맞춰 움직이며 상대의 공격을 읽고 대응합니다.
2. 호다(Roda) — 사람들이 원형으로 둘러서서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공간. 그 안에서 두 사람이 기술을 겨룹니다.
3. 비림바우(Berimbau) — 카포에이라를 상징하는 1현 타악기. 이 소리에 맞춰 모든 움직임이 이루어집니다.

비림바우
브라질 역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카포에이라가 불법이던 시절, 거리에서 연습하던 수련자들이 경찰의 발소리를 듣자, 순식간에 비림바우를 연주하며 모두 춤추는 척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경찰이 지나가면 다시 발차기와 기술 훈련으로 복귀했다는 것이죠. 이 ‘순간 변신 능력’ 덕분에 카포에이라는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현대 카포에이라 — 관광, 스포츠, 그리고 문화 수출품
오늘날 카포에이라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문화 수출품이 되었습니다. 리우 카니발이나 해외 브라질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공연 종목이고, 영화와 게임에도 종종 등장합니다. 영화 Only the Strong이나 게임 철권 시리즈의 ‘에디 고르도(Eddy Gordo)’ 캐릭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관광지인 살바도르, 리우 해변, 상파울루 시내 중심가에서는 카포에이라 공연이 흔하게 펼쳐집니다. 관광객들은 그 자리에서 즉석 체험을 하기도 하고, 공연 후 모자에 팁을 넣으며 “이게 진짜 브라질”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게임 캐릭터 에디 고르도
카포에이라는 단순한 ‘운동’이 아닙니다. 노예의 저항에서 시작해, 길거리에서 자라나고, 이제는 전 세계가 사랑하는 문화가 된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브라질을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면, 그리고 여행지에서 단순히 보는 것보다 몸으로 느끼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카포에이라의 호다 속으로 들어가 보세요. 비림바우의 ‘둥~’ 하는 울림과 함께, 당신의 심장도 브라질의 리듬에 맞춰 뛰게 될 것입니다.



댓글